신랑은 종종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나보다.
뜬금없이 내게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던진다.
부모는 어디 계시든 우리를 키우시는 것 같다며.
철드는 신랑 1.
아버지가 어느 날 나한테 만원짜리를 주시면서 이러시는 거야.
“오늘 아빠가 친구들이랑 추어탕을 먹는데, 서울까지 올라온 친구들한테 내라고 할 수 없어서 아빠가 샀다.
2만5천원이나 썼는데, 아빠만 이렇게 쓸 수 없으니까 우리 아들도 맛있는 거 사먹어라.”
그날 나는 친구들이라 밥 먹고 노느라고 돈을 펑펑 쓰고 다녔는데,
아빠는 2만 5천원이 너무 큰 돈이었던 거야. 당신이 7000원짜리 추어탕을 드신게, 아들한테 미안해서, 큰 맘먹고 만 원짜리를 주신거지.
마음이 쓰렸어. 너무 죄송하기도 했고 말야.
나는 아버지 같이 될 수 있을까?
철드는 신랑 2.
내가 대학에 갈 때쯤, 아버지가 8년을 넘게 탄 승용차를 바꾸시려고 하시더라구.
“앞으로는 우리 아들도 운전 배워서 아빠 피곤할 때는 아들이 운전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너가 몰고 나가서 가끔 친구들도 만나려면 좋은 차를 사야겠지?” 하시곤 새 차를 뽑으셨는데..
결국, 아버지보다 내가 더 많이 그 차를 탄 것 같아.
더 오래 내 곁에 계셨다면 나는 아버지께 좋은 차를 뽑아드리는 아들이 될 수 있었을까?
나도 훗날 내 것들을 살 때 내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철드는 신랑 3.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가 불평을 하는 걸 본적이 없어..
새벽같이 일어나서 멀리로 학교를 다니는 누나를 데려다 주고 출근하시고는,
엄마 가게로 가셔서 밤 늦게 까지 가게를 도우시고,
밤 늦게 문을 닫고 같이 집으로 퇴근을 하셨거든.
근데, 한번도 남들처럼 술을 마시시거나 담배를 물고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어.
최소한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정도를 걷는 사람으로 보였거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지? 어떻게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하도록 하실 수 있었을까?
나도 우리 자식 앞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철드는 신랑 4.
우리 아버지는 융통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사신 분이셨어.
근데 나중에 아버지가 많이 변하셨었는데,
생각해보면 10대를 험난하게 반항하며 보냈던 나 때문이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내가 아버지를 고개 숙이게 한 건 아닐까?
부모는 자식을 키운다.
그 자식이 속을 썩이건, 부모를 부정하는 사람들이건, 자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건,
독신주의자이건,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부모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이 누구건 간에, 나를 지금도 키우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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