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러 간다.
그때마다 나는 문득 인생을 느낀다.
이번주에는 스파게티도 해먹고, 고등어도 지져먹어야지.
올리브도 하나 사야겠다. 커피는 세일하면 사다 두어야지.
냉동피자랑 아이스크림도 사와야지.. 안먹은지 오래됐군.
아차차... 휴지를 빼먹을 뻔 했구나..
살 것들을 생각하면서 약간은 설레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마트에 가서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면서 물건을 찾고,
어떤 것은 필요한 것들, 어떤 것들은 필요없는데 그냥 필요할 것 같다고 정당화하면서
어떤 것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냥 '좋으니까' 집어버린다.
카트에 담고, 계산을 한다.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이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샀군..
어떻게 들고 간담...
그러나.... 역시나 산 물건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낑낑대며 물건을 주렁주렁 들고 어깨에 힘을 빡주고는 걷는다.
처음에는 자신있게 걷는데, 점점 팔이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힘이 들어 장바구니를 내렸다, 쉬었다 걷는다.
그래도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면 물건을 생각도 없이 많이 사서 구질구질해 보이는 건 싫다.
어깨에 더 힘을 주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걷는다.
그러고 나면 더 힘들다..
저기 코너까지만 가서 쉬어야지 맘을 먹고 간다.
코너까지 가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혹은 코너에 가기전에 힘이 빠져 쉬기도,
혹은 코너를 돌아 지나서 한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갈수록, 쉬는 빈도는 늘어난다.
어깨 힘은 이제 점점 한계가 느껴진다.
팔도 늘어날대로 늘어난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은 장바구니 끈때문에 끊어질 것 만 같다..
이제 우리집 대문이 보인다.
하아... 숨을 쉬는 순간,
나는 마치 인생을 통째로 느껴버린다.
.
.
.
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장보는 이 과정의 순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내 모습 같다말이다.
어린시절, 이담에 크면 이것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저것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될 수 있는한 많은 꿈을 꾸면서 생각한다.
마트라는 세상은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안겨줄 것만 같다.
그 때 가면 더 많은 세상이 펼쳐 있겠지. 선택은 나의 것일 것.
마트에서 물건들을 보고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더 사야지.. 하는 나의 생각과 같이 말이다.
나는 열심히 인생을 달린다.
이 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재고 따지고,
경력을 쌓고, 공부하고, 또 내 실적을 만들고, 그리고 사랑도 하고 말이다.
어느 경력을 카트에 넣을 것인가, 이것은 넣을 것인가 말것인가..
분주히 나는 인생의 카트를 끌고 달리면서 분주히 '해야 할 일들을,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때가 되면 나는 계산대로 나의 커리어를 안고 가 줄을 선다.
노력(돈)으로 그것들을 얻어 낸다.
그러나 나의 경력, 학력 혹은 가족, 사랑 모두 책임과 무게로 느껴진다.
때로는 이 물건들을 집까지 잘 가져갈때의 힘듦이 못 참을 것 같이 힘들게 느껴지만,
혹은 내려놓고 가고 싶지만,
내가 치른 대가, 혹은 노력이 헛될까 두려워서,
혹은 집에 가족들이 내가 사온 물건들로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혹은 내가 즐길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는 잠시 내려놓는 휴가를 즐기더라도
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집을 향해 걸어간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샀을까..
가끔은 목적없는 것들도 내 인생에 가득차 있다.
쓸데없이 내 어깨를 누르기도 내 팔을 늘어나게 할 만큼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데,
차마 그 목적을 찾지 못해 허무해지기도 한다.
저 전봇대까지만 가서 쉬어야지 단기 목표을 잡으면 힘이 난다.
저 길을 건널때까지만 가야지 장기 목표을 잡으면 자주 힘이 빠진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힘이 나서 목표보다 더 많이 이루기도,
때로는 목표를 잊고 자주 힘이 빠져 쉬어버리기도 한다.
쉬어 가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고,
건강은 쇠약해 진다.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장 바구니를 풀며 생각한다.
이건 왜 샀을까. 이미 집에 있었는데,
이건 잘 샀네. 잊어버릴 뻔 했는데, 잘 사왔네.. 하며
후회와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며 물건들을 정리한다.
문득 나도 모르게 파 한단을 길에 흘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명히 산 것 같은데 인생에서 감쪽 같이 사라지는 것들도 종종 있다.
신랑을 위해 준비한 커피를 신랑이 맘에 들어하는 것을 보며 나도 함께 기쁘다.
나의 인생에 고마워 하는 사람 혹은 존재와 함께 내 인생도 기쁠 수도 있다.
그리고 인생 그 다음의 생을 준비한다.
그러나,
역시... 장은 다시 볼 수 있지만, 지금의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인생의 장을 보러갈때는 계획도 잘 세워야 할 것 이고,
장도 잘 보아야 할 것 이고,
장을 보고 오는 도중에도 지쳐 쓰러지지 말아야 할 것이고,
와서 후회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수없이 듣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장을 보고 있을까, 혹은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가고 있을까...
어디쯤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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