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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는' 아내, 그를 '돕는' 남편

yyva 2013. 3. 4. 05:25

2011/07/12 21:25



육아를 '하는' 아내, 그를 '돕는' 남편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시던 동몽선습이라는 한자 책의 첫 글귀에 부생아신 모국오신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날 나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신다 했습니다. 

엄마가 날 낳았는데, 아부지는 돈 벌고.. 
머리속에 들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따라 읽으라 하니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글귀는 생각이 안나는데, 그 말씀만 유독 머리에 남아 '성'을 공부하는 제게 다시금 머리를 갸우뚱 하게 만듭니다. 

아버지의 정자가 어머니의 난자와 만나는 곳이 어머니의 나팔관.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리는 자라 어머니의 피와 살을 먹으면서 99%가 넘는 영양분을 어머니의 것으로 부터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상으로만 보면, 그래 아버지는 정자를 보냈으니 알을 '낳았다'고 하는 표현의 낳았다가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고, 
어머지는 몸속에 품었지만, 난소에서 알을 낳고, 어머니의 자궁을 통해 또 세상밖으로 나오니, 어머니도 낳는 것이 맞는데... 
순서로 봐도 난자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머니가 나를 낳는다고 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여튼 옛날 옛적 사람들의 과학수준은 지금과 달랐을 테니 그냥 이해 하기로 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낳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면, 정자를 통해 나의 반쪽 DNA를 생성해주신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각하니, 근엄한 남성의 권위가 무색해져 그렇게 말을 지은 것은 아닌 지 옛날 선비들을 그려 봅니다. ㅋㅋ 그냥 함께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시는 우리 부모님.. 해도 될일을 말입니다. 

표현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부모됨의 성역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트윗을 하다 보니, 어떤 님의 트윗에
"오랫만에 아내의 육아를 도와..." 라는 말을 보고 '헉' 했습니다. 
남의 자식을 아내가 키우는 것은 아닐 테고, 
육아를 아내의 일로 생각하는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남편의 자연스러운 트윗이었겠지만, 
보고 있는 동안 머리속이 혼란 스러워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뭐 그런 사람도 있을 테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은연중에 문화속에서 체화된 우리의 생각들이 말과 행동속에 고스란히 뭍어나는 것이지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여자'도'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잘 못하는 게 다반사지요.  

여성의 배속에서 길러지고, 아이에게 자연 수유를 할 수 '능력'이 있는 사람도 일차적으로 여성이라는 점,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의 울음에 민감하게 반응 한다는 실험 결과 들 만으로 
아이를 엄마가 주체가 되어(엄마의 책임하에) 길러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난자만으로 만들어 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가치로운 일일까요? 
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라면 위와 같은 논리를 억울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제외하고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엄마만의 역할이라고 세상이 혹은 문화가 규정짓는 일을 
어떻게 서든 바꾸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가치로운 일은 함께 해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아내가 아이 키우는데 많이 도와줍니다'... 라며, 자신의 양육 주도권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을 많이 못 보았습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데 많이 도와주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성이라는 데 자랑스러워 하고, 
또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내를 많이 보았지만요.. 

양육은 여자가 할일이지.. 라고 말한다면, 억울해 할 일입니다. 가치있는 일에 소외되고 있는 것입니다. 
힘든 일이기에 가치없는 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나의 생명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남성들이 양육의 주체성에 대해서 너무 당연시 이야기하고, 
우리가 함께 하는 육아에 대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내의 육아'라는 말 대신, '우리의 육아'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사회 말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엄마의 영양분을 섭취하고, 엄마의 심리상태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과언이 아닐 10개월을 보냅니다. 
아빠는 그렇지 못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엄마보다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 두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한 아빠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빠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은 '아빠'니까요. 

일리 있어 보이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과정속에서 아빠는 엄마와 '함께' 육아를 할 때 
아이와의 교감, 그리고 육아라는 가치있는 일에서 그 역할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그에 대한 보람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일 테구요. 

아이의 밥을 챙기는 아빠,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엄마, 
필요한 날, 아이의 보모를 구하는 아빠, 
주말, 아이와 놀이동산에 가는 엄마,
아이의 젓병을 소독하는 아빠, 
피크닉에 아이의 기저귀를 챙기는 아빠.. 
의 모습들이 자연스레 부부에게서 섞여 나타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머리속에서도 엄마는 밥을 주는 사람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림을 지우고 싶습니다. 
물론 가정마다 다른 상황에서 그런 현상을 보고 자랄 수 있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엄마가 밥을 줄 수도 있고, 아빠는 돈을 벌어올 수도 있는 사람인 것이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자아 성취와 개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이 시대에, 
가정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함께 소통하는 민주적인 부부가 많으면 
양육이라는 가치롭지만 어려운 일에 관련한 많은 문제들이 조금은 누그러 지지 않을까요. 

세상의 남성들이 기억해 주길 바라는 한가지가 있다면, 
여성들도 나면서 부터 아이를 키우는 일을 몸에 익혀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요리도 자꾸 해야 늘듯, 
아이도 자꾸 안아보고, 기저귀도 갈아보고, 대화도 하고 하면서 키워봐야 느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