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국 무통주사를 맞는 걸로 결정을 하고 나니 신랑더러 짐싸란다.
무통은 여기서 맞는게 아닌가 보다.
근데 이 무통 주사라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자주 놓아주는 것이 아닌지,
권장 사항이 아닌지...
임산부 클라스 갔을 때 부터 무통 주사의 부작용만 열심히 설명해 주더니,
막상 출산에서도 그 토록 진통을 하도고 안 놔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리를 옮겨서 무통주사를 놓는 분만실에 가니, 전용(?) 미드와이프가 있다.
다른 분만실에서는 여러 미드와이프들이 번갈아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여기 미드와이프는 내 곁을 떠나지를 않는다.
뭔가를 체크하고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보고 하는 루틴을 계속 유지한다.
다른 미드와이프가 와서도 계속 하지만, 자리를 비우는 법이 없다.
이 모든게 결국 나라 돈이라고 생각을 하니, (영국은 모든 의료 서비스가 무료)
약값, 기계값, 전기세, 인건비 까지... 자연분만하고도 비교도 안되게 비용이 들어 보인다.
안 놔주려고 하는 것도, 제왕 절개도 아주 극심한 상황이 아니면 안 한다는 이야기도 일리있어 보인다.
자연주의, 오가닉을 외치는 것이 좋은 것인 줄은 안다만,
(비용줄이려고) 첨단기술을 무시하는 것도 인간 기술의 퇴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이래서 아는 사람은 영국을 의료 후진국이라고 불렀나....
여튼,,
무통 주사가 결정되고 나니, 미드와이프는 나를 휠체어에 싣고,
신랑은 짐을 들고, 엄마는 우선 남은 짐들과 방을 지키고,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그야말로 기계들이 가득한 분만실로 이동했다.
이 곳의 뷰는 .. 볼게 없는 그냥 빌딩들.
빅벤이 보이는 쪽 반대편인가 보다. 에잇.
사랑이가 나오면 '엄마가 너를 빅벤 보며 낳았단다.. .' 이야기 해주고 싶었는데,
이젠 '엄마가 너를 빅벤 강건너에 있는 건물에서 낳았단다..' 로 바뀌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그 생각 하고 있었다. ㅋㅋㅋ
휠체어에서도 진통이 밀려오면 신랑손을 잡고 죽어라 소리지르면서 인도가 되었는데..
이제는 의사가 나타나서는 (자연분만실에서는 의사가 없고 미드와이프가 아이를 다 받는다. 미드와이프가 의사를 부르지 않는한..) 무통주사의 부작용에 대해서 설교를 하신다.
내가 진통이 오면, 나를 쳐다만 보고 있다가, 진통이 지나가면,
따발총 같은 속도로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것도 영어로.
그래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도 못알아듣겠거니와,
의료 영어는 더 안되겠거니와,
진통때매 정신은 딴 데 있었는데다가,
가스를 너무 마셔서 정신이 약 한 사람처럼 몽롱한데,
부작용 설교가 귀에 들어오겠느냐 말이다....
여튼 의사 너는 떠드세요, 나는 여튼 맞을랍니다..는 위험한 태도로 무통주사에 임했다.
등에 주사를 찌르고 그 순간에 진통이 오면 자세를 유지한 채 참아야 한다는 거.
맞아보신 엄마들을 아시겠지만,
이 주사는 한대 맞고 뿅!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등에 주사를 놓아서 링겔처럼 조금씩 약을 투여하는 것.
진통이 심해진다 싶으면, 버튼을 눌러 약을 더 넣고 하는 조절식.
근데.... 문제는..
이 약이 나한테는 약발이 안서는 거였다.
약이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길래 참고 있었다.
계속 가스도 함께 마시면서, 빨리 약발이 서기를 바라고 있는데...
미드와이프들의 교대시간이 왔다. (사실 거기 있으면서 수많은 미드와이프를 만났다. 교대만 한 5번 한것 같으네.)
새로운(마지막) 미드와이프가 나더러 '너 무통주사 맞고 있는데 가스는 왜 마셔?' 그런다.
'나 아직 아파.' 그랬더니..
그럼 무통주사가 효과가 없나본데... 그런다. ㅠㅠ
헐.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왼쪽 배에 계속 진통이 오는데,
나는 바보 같이 그게 원래 그런건줄 알고 무통주사를 맞고도 가스를 연신 들이마시고 있었던 것.
미드와이프가 의사를 불렀다. 아까 그 부작용 연설하던 그 의사다.
여튼 오른쪽에는 약발이 서는지 진통이 줄었다.
그래서 정신차리고 보니, 혼자가 아니다. 의대생들 줄줄이 따라다닌다. 헐.
나를 무슨 실험실 쥐 쳐다보듯 쳐다본다.
이 의사는 나의 이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한다.
결국 의대생 참관도 허락한 셈. ㅠㅠ
(출산계획 다 필요 없어!!! ㅠㅠ)
원인을 밝히지 못한듯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나한테 더 강한 약을 넣어주겠단다..
그리고 나서는 그 '더 강한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또 연설을 하신다.
아 놔....
미드와이프가 자세를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해보는데,
의사가 말을 자른다. 그래봐야 소용이 없고, 지금 자세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단다.
여튼 젊은 백인 남자 의사는 거만하기 짝이 없어 보이고,
흑인 미드와이프 아줌마는 뭔가 불만이 있는 눈치다.
그리고 나서 난 '더 강한 약'을 맞고 이젠 진짜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니,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래도 왼쪽 배에는 계속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오는거다.
이거는 멍미...
시간은 거의 자정으로 향해가고, 미드와이프가 내게 결국,
자세를 바꿔볼까? 한다.
아가가 머리는 아래를 향했는데 몸을 틀었다고 했다. 그래서 혈관을 누르는데,
그게 아마 약이 도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번 시도해 보잖다.
어째 관상으로 봐도 난 처음부터 이 언니가 의사보다 더 신뢰가 가더라니...
그래서 밑져야 본전, 몸을 틀었는데,
거짓말 처럼 왼쪽 배에 진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여튼 그렇게 결국 나는 진통의 고통에서 벗어나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시간은 바야흐로 24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
무통주사를 맞으면 진통이 언제오는지 알길이 없으니,
배에는 두가지 띠를 두르는데,
하나는 진통이 오는가 알아보는 띠,
하나는 아가의 심장박동을 체크아는 띠.
엄마들은 아시겠지만, 진통이 오는건 자궁이 열리는 과정이다.
그래서 진통이 어느정도 와야 자궁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오는데,
나는 그때 부터 고통없는 진통을 느끼며 자궁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출산 상식중에 한가지, 양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게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엄마야! 나 양수가 터졌나바!!' 하면 다들 아이가 나온다고 병원으로 가고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나오는 징조가 양수가 터지는 건 줄 알았다.
근데 나는 20시간 진통을 넘게 해도 양수가 안 터지는 거다.
알고 보니,
양수가 터지는 건 사람마다 다른데,
너무 미리 터지고 양수가 다 흘러 나가 버리면, 아이가 나올때 윤활유 역할을 하는 양수가 없어서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나처럼 양수가 안터지면, 자궁문이 다 열렸을때 억지로 터트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꼭 양수가 터져야 진통이 오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여튼 나는 끝까지 양수가 터지지를 않아서 결국 미드와이프가 양수를 터트렸다.
무료한 기다림도 잠시, 미드와이프가 '드디어 10cm'를 외치고,
나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근데 무통주사의 부작용중 하나...
당최 언제 어떻게 어디다 힘을 줘야 하는지 느낌으로 알수 없다.
머리로 생각해서 미드와이프의 말을 들어가며 힘을 주어야 한다는 점.
진통이 올 때는 자동적으로 힘이 들어가는데,
이건 미세한 진통과 함께 힘을 주어야 하는데, 이건 또 쌩짜로 힘을 주는 느낌이었다.
너무 초 강력 진통제를 맞은건가... 후회도 밀려오고.. ㅠㅠ
자궁문이 다 열렸는데도,
뼈마디가 분리되는 힘을 주었는데도,
뭐가 부족한지.. . 사랑이는 나올 생각을 않고..
결국 미드와이프가 의사를 불렀다.
상의 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아가가 안 나오니 이대로 하면 너무 지체되니까,
유도분만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제왕절개도 생각해 보자는 거다.
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27시간 가까이 진통할 거 다 하고,
가스에, 무통주사에 약에 쩔었는데,
유도 분만, 제왕절개라고라고라고라....
사랑아 제발 나와 다오~~~ 기도를 하는데,
의사가 딱 30분만 더 힘 줘보고 유도분만 하잖다. ㅠㅠ
지금 보니 그냥 힘주면 나올 것 같기도 하다고...
그래서 더이상 약과의 타협은 없다!! 고 생각하면서,
죽을 힘을 다해 힘을 줬다.
그 동안의 힘이 약했던 걸까.
쑴풍~ 사랑이가 나왔다.
그 시원한 느낌이란. ㅎㅎㅎ
아이가 출산되는 그 순간에는 극도로 많은 양의 엔돌핀이 분비 된다더니,
아이가 나오고 나서는 바로 따라서 태반이 엄청난 혈액과 함께 밀려나오는데,
아이가 나오면 그 이후의 고통은 그보다는 덜하다는 것.
물론 나는 무통주사로 약에 쩔어 있어 큰 진통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엔돌핀의 역할은 톡톡히 본 것 같다.
탯줄을 자르기도 전 아이를 내 가슴에 얹어 주는데,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도 울고, 아가도 울고, 엄마도 울고, 신랑도 울고...
험난한 27시간의 대 장정이 끝나는 순간에 서야
사랑이는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그만게 27시간을 용을 썼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안쓰럽고 자랑스럽고 그런지..
그 좁은 산도를 뚫고 용감하게 나와 준 사랑이가 자랑스러워서 사람들 한테 자랑할 판이었다.
순간, 나는 이미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 버렸다. ㅎㅎㅎㅎ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랑은 카메라를 놓지 않아서,
나의 그 흉한 비명소리가 지금 내 컴터에 담겨있다. ㅋㅋㅋ
한손에는 카메라 한손에는 가위가 쥐어진 채, 신랑은 탯줄을 잘랐고,
아가는 닦여서 체중계와 줄자에 재어 졌다.
몸무게는 3.9키로, 키는 56센치.
수치를 듣고 나니... '어쩐지... (힘들드라..)'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ㅋㅋㅋ
머리는 꼬깔 같은 모양을 하고 찌그러진 듯한 두상이 걱정이 되어서 이야기 하니,
엄마 말씀에 다 변한단다. (실제로 다 변했다. ㅎㅎ )
산도를 지나오느라고 자기도 맞춤형으로 저렇게 나오는 거라고. ㅋㅋ
신비로운 세상이 열렸다.
이대로 죽는 구나 할 때, 새 세상이 열린다.
뱃 속에 달고 다니던 녀석이 세상에 나오니, 여러사람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병원에서 내 병실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랑이를 보고 '빅보이(Big boy)'라고 외쳐 댔지만,
내 눈에는 작고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걸...
내 아픈건 어디 가고 (물론 진통제의 힘이었지만..) 사랑이 얼굴만 바라보게 되드라.
잠시 숨돌리니, 진통 시작 후 두번째 해가 뜬다.
그렇게 내 생애 잊지 못할 스물 일곱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산고에 버금가는 고통이 다시 시작되는데....
- '말로만 듣던 서양 여자들의 산후조리' 편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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