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elling the stories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에 앙드레 김이 있었다.

yyva 2010. 8. 13. 15:02

내가 앙선생님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었던 건 피스퀸컵이 열릴 때였다. 국제여자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두번째 열리는 이 행사에 스탭으로 몸담고 있을때다. 앙드레김이 피스퀸컵 전야제에 그의 패션쇼를 올렸다.


2006년과 2008년 두번에 걸쳐 축구화에 모질게 뛰기만 했던 우리 여자 축구선수들에게
아름다운 드레스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던 앙드레김 선생님은
두번째 쇼를 수원 화성에서의 야외 패션쇼로 올리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초대장만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혹은 TV에서만 보던 앙선생님의 패션쇼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그리고 축구선수들이 런웨이에 올랐던,
수원 화성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을 배경으로 볼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였다.

스텝이라는 명목하에 제일 잘 보이는 Press 석에 앉아 화려한 불빛아래 런웨이를 지켜보는건 재밌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는 디자이너의 눈빛은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다.
 
호주선수 멜리사 바비에리
 
미국대표 안젤라 휴클리스

한국대표 박희영 선수

한국에서는 텅빈 경기장이 익숙한 우리 선수들이지만, 그날의 쇼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패션쇼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잔디밭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패션쇼를 즐길날이 또 있을까.
앙드레 김 선생님은 비인기 스포츠 - 특별한 사람들의 패션쇼 - 대중 을 엮어준 셈이다.

물론 그들의 축구선수로서의 활약도 훌륭하지만,
그 날 나는 누구도 앙 선생님의 옷속에서 아름답지 않을 사람은 없겠구나 느꼈다.

리허설도 부족했던 선수들은 표정부터 운동선수의 걸음걸이까지
패션쇼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는데....
그러나 앙 선생님을 이래서 최고라 하는가.

선수들의 고개 부터 음악의 흐름을 타게 하는 기술까지
쇼 전체를 앙드레 김 패션쇼로 만들어 나갔다. 


미국대표 오스본 레슬리 선수


그의 옷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입기보다 보기 좋은 옷이라는 의미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그의 옷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모델이 아니더라도
옷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자연스레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신비감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패션쇼는 옷보다 사람이 중요한 패션쇼였는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움을 항상 이야기했던 앙드레김.
곱고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만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유니세프의 오랜 후원자였고,
여자 축구의 거친 모습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를 항상 후원했다.

여자 축구사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앙드레 김은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에 '아름다움'으로 서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블로그 발행 며칠만에 베스트로 선정을 해주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앙선생님을 기리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