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교를 다닐때 가장 화두는 물론 영어였다. 그러나 그건 물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목적에서였다.
아무리 영적(?)이어도 눈빛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 일 테니까.
많이 듣고,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는 것도 결국 상대로 하여금 나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간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일대일의 관계속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대중을 대하는 사람들은 어찌할까.
마음을 사지 못하는 21세기 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귀를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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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장교다. 8년간이나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도록 해 전쟁 영웅이 되었다. 살아 돌아온 그가 말했다. “낙관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가게 될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희망에 찬 모습을 보이다가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면 급격히 비관적이 되었다가 끝내 쓰러졌다고 한다. 위기 속에서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위기 극복 사례로 전해지는 이야기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낙관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자고 역설까지 들먹인 건 아니다. 세종시, 천안함, 4대 강에 눈만 뜨면 좌파니 극우니 하는 키워드가 난무하는데 어느 누가 시대를 낙관만 하겠는가. 문제는 무관심이다. 아니 어쩌면 무관심해 보이는 많은 이들은 살기 위해 스톡데일이 말한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버거운 생업’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30년 가까이 광고 일을 하면서도 생각만 하면 언제나 긴장되는 무서운 존재가 있다. 고집불통 상사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광고주가 아니라 맘을 읽을 수 없는 소비자라는 존재다. 세상에서 광고 회사의 브랜드 담당자들보다 소비자 조사 데이터를 많이 접하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브랜드별로 정기적인 조사를 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많은 회사는 1년 내내 조사와 분석만 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조사 기법은 날로 선진화돼 가는데 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은 왜 점점 더 의외의 결과가 터져 나올까. 오죽하면 사람 머릿수를 세지 말고 심장박동수를 세야 한다고 했을까. 그 이후로 감성이라는 화두가 세상에 떠올랐고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쓴 감성 마케팅 서적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감성이라는 단어는 기업 이미지와 제품 광고에는 물론 삶의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붙어 버렸다. 감성교육, 감성리더십, 감성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우리가 아는 감성은 어떤 것인가. 눈 맞추고 등 토닥여 주는 것이 감성인가.
오래전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다는 광고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그러나 막상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들일 즈음에는 유지비가 적게 든다든지, 더 안전하고 오래 간다든지 하는 이성적인 포인트에서 구매하는 경향을 보였다. 감성이란 이성의 겉옷이다. 적어도 설득 커뮤니케이션에서 감성과 이성은 대치되는 말이 아니다. 알맹이 없이 감성적인 포장만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다. 장 보러 가면 구입할 물건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고 깨알 같은 성분 표시까지 뚫어져라 보고 확인하는 소비자에겐 말이다. 어떤 마트엔 성분 표시를 편히 읽으시라고 돋보기를 매달아 놓은 곳도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소비자를 대하는, 또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 받으려는 마케터들의 자세다.
하물며 국민을 대하는 정치 리더라면 좀 더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 아닌가. 광고시장에서도 상대 브랜드를 비방하는 광고를 하면 그 제품을 소비자들이 예쁘게 봐 주질 않는다. 그러나 비교 광고는 예리한 눈으로 검증하려 한다. 제발 싸우지들 말고 국민이 이성적으로 비교하고 평가 검증하도록 하라.
언제부턴가 ‘국민의 의견’이란 말만 나오면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누가 국민에 기대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소리 한번 내 보겠는가. 포퓰리즘이란 말을 과용하지 말라. 과일도 속이 차면 씹는 소리가 다르다. 국민은 속이 찬 그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스톡데일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정치 리더들에게 ‘냉혹한 사실’이란 생업에 겨운 국민이다. 그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참여할 의지가 생기도록 속을 채워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 신학기다. 지역별로 우리가 새로 뽑은 반장이 문맹자가 아니길 바란다. 20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말했지만, 21세기 문맹자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약력=성균관대 광고홍보학 박사, 성균관대 겸임교수, ㈜대보기획 총괄부사장, 브랜드&평판연구소 연구이사, 제15~17대 대통령 선거후보 홍보 및 PI 컨설턴트
아무리 영적(?)이어도 눈빛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 일 테니까.
많이 듣고,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는 것도 결국 상대로 하여금 나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간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일대일의 관계속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대중을 대하는 사람들은 어찌할까.
마음을 사지 못하는 21세기 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귀를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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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장교다. 8년간이나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도록 해 전쟁 영웅이 되었다. 살아 돌아온 그가 말했다. “낙관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가게 될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희망에 찬 모습을 보이다가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면 급격히 비관적이 되었다가 끝내 쓰러졌다고 한다. 위기 속에서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위기 극복 사례로 전해지는 이야기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낙관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자고 역설까지 들먹인 건 아니다. 세종시, 천안함, 4대 강에 눈만 뜨면 좌파니 극우니 하는 키워드가 난무하는데 어느 누가 시대를 낙관만 하겠는가. 문제는 무관심이다. 아니 어쩌면 무관심해 보이는 많은 이들은 살기 위해 스톡데일이 말한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버거운 생업’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30년 가까이 광고 일을 하면서도 생각만 하면 언제나 긴장되는 무서운 존재가 있다. 고집불통 상사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광고주가 아니라 맘을 읽을 수 없는 소비자라는 존재다. 세상에서 광고 회사의 브랜드 담당자들보다 소비자 조사 데이터를 많이 접하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브랜드별로 정기적인 조사를 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많은 회사는 1년 내내 조사와 분석만 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조사 기법은 날로 선진화돼 가는데 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은 왜 점점 더 의외의 결과가 터져 나올까. 오죽하면 사람 머릿수를 세지 말고 심장박동수를 세야 한다고 했을까. 그 이후로 감성이라는 화두가 세상에 떠올랐고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쓴 감성 마케팅 서적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감성이라는 단어는 기업 이미지와 제품 광고에는 물론 삶의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붙어 버렸다. 감성교육, 감성리더십, 감성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우리가 아는 감성은 어떤 것인가. 눈 맞추고 등 토닥여 주는 것이 감성인가.
오래전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다는 광고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그러나 막상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들일 즈음에는 유지비가 적게 든다든지, 더 안전하고 오래 간다든지 하는 이성적인 포인트에서 구매하는 경향을 보였다. 감성이란 이성의 겉옷이다. 적어도 설득 커뮤니케이션에서 감성과 이성은 대치되는 말이 아니다. 알맹이 없이 감성적인 포장만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다. 장 보러 가면 구입할 물건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고 깨알 같은 성분 표시까지 뚫어져라 보고 확인하는 소비자에겐 말이다. 어떤 마트엔 성분 표시를 편히 읽으시라고 돋보기를 매달아 놓은 곳도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소비자를 대하는, 또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 받으려는 마케터들의 자세다.
하물며 국민을 대하는 정치 리더라면 좀 더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 아닌가. 광고시장에서도 상대 브랜드를 비방하는 광고를 하면 그 제품을 소비자들이 예쁘게 봐 주질 않는다. 그러나 비교 광고는 예리한 눈으로 검증하려 한다. 제발 싸우지들 말고 국민이 이성적으로 비교하고 평가 검증하도록 하라.
언제부턴가 ‘국민의 의견’이란 말만 나오면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누가 국민에 기대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소리 한번 내 보겠는가. 포퓰리즘이란 말을 과용하지 말라. 과일도 속이 차면 씹는 소리가 다르다. 국민은 속이 찬 그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스톡데일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정치 리더들에게 ‘냉혹한 사실’이란 생업에 겨운 국민이다. 그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참여할 의지가 생기도록 속을 채워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 신학기다. 지역별로 우리가 새로 뽑은 반장이 문맹자가 아니길 바란다. 20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말했지만, 21세기 문맹자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약력=성균관대 광고홍보학 박사, 성균관대 겸임교수, ㈜대보기획 총괄부사장, 브랜드&평판연구소 연구이사, 제15~17대 대통령 선거후보 홍보 및 PI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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