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는 런던 교통부에서 제공하는 'Baby on Board(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새겨진 배지가 있습니다.
임산부들에게 제공되는 배지인데요, 임신 초기 증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마다 어지럽고 힘든 임산부들이 배가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를 때나, 선천적으로 아이 임신중에도 별로 티가 안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임산부들을 보호 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중의 관심과 배려를 요구하기 위한 도구로 제작 된 배지 입니다.
엊그제는 버스를 탔는데, 사무직 일을 하시눈 분 같은 수트 차림의 여자분이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배 옆에 'Baby on Board' 배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어떤 분이 그런 의견을 내서 배지를 배포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반응이 별로 좋지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자발적으로 잘 이루어 진다고 생각해서 과연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생각했었는데, 많은 개인경험들을 담은 임산부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막상 임산부가 아니다 보니, 그런 경험들이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지 못했지만, 하다 못해 차를 타고 멀미만 해도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는 임산부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얼마나 힘들지 눈앞에 선하게 보일 정도의 경험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배지나 표지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의견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참신해 보였습니다. 배지 아이디어도 참신해 보였구요.
그런데 현실은 그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아 성취나 경제적인 이유로 이제는 임신을 해도 직장을 계속 유지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중의 배려는 아이를 몸속에 품고 키워야 하는 10개월 부터, 나아 기르는 수십년의 시간 까지도 매정할 때가 많습니다. 영국은 선진국이라고 배지도 많이 보편화 되어 있고, 영국의 매너있는 신사들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런던의 임산부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나라 못지 않더군요. 배지가 필요없으리만큼 남산만한 배를 하고 돌아다녀도, 어떤 사람들은 정장의 말짱한 청년의 브리프 케이스에 눌려 퇴근 내내 부른 배를 움켜쥐고 왔다는 이야기며, 일부러 더 내 밀어 보이며 힘든 다리를 어떻게든 쉬게 해 보려고 노력한 자기의 모습이 바보 같다고 하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메말라 가는 정들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가장 양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역시나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여자, 특히 나이드신 여자분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나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배려에 인색한 우리들, 배려에 무관심 한것인지, 무지한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Baby on Board' 배지가 무용 지물만은 아닙니다.
아직은 소극적인 예비 엄마들과, 임신 초기의, 비 임산부들과 몸매가 비슷한 시기의 임산부들에게는 특히 유용하게 쓰여지기도 합니다. 임산부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한편으론, 배지가 당사자의 의견을 확실히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양보를 해야 하나 아닌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서있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왜 자리를 양보하냐는 식의 노인 어른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입니다. 그럴땐 괜히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 내 배려가 머쓱해 지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살이 찐 여자분에게 임신 중인줄 알고 배려를 했다가 괜한 눈총만 받기도 하구요. 어찌보면 작은 배지 하나가 임산부와 배려를 하고자 하는 사람과의 묵언의 의사소통 도구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또한, 모르던 사람도 알게 되면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역시, 가능성의 여부입니다. 작은 배지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양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겠죠. 배지가 없는 경우보다는 배지가 있는 경우, 그 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행동에 옮길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확률적으로 역시나 배지가 '인식'에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임산부를 위한 배려. 결국 형식보다는 먼저 사람들의 인심과 인성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있어 마음을 움직여 주기도 한다는 사실에, 많은 아이디어들과 실천 속에서 사회가 한 걸음씩 성숙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http://www.tfl.gov.uk/gettingaround/transportaccessibility/1169.aspx#baby_on_board
* 임신한 친구가 영국에 오고 싶어하는데, 문득 이 배지 생각이 나서 런던 교통부가 관광객에게도 이 배지를 제공하는지 알아보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오면 또 글을 업그레이드 해 드리지요. 저도 답이 궁금합니다. ㅎㅎ
'me telling the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생명과 엄마를 대하는 다른 자세. (2) | 2012.12.14 |
---|---|
"아이가 타고 있어요" 뱃지(후편) : 메일을 보냈더니.. (1) | 2011.07.17 |
제이미 올리버, 먹거리에 시비걸다. (2) | 2011.05.20 |
로얄 웨딩, 직접 가본 풍경!! (1) | 2011.05.05 |
로얄 웨딩으로 돈 버는 영국. (5) | 201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