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elling the stories

새생명과 엄마를 대하는 다른 자세.

yyva 2012. 12. 14. 20:29


블로그를 자주 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으로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다가,

요즘 삶의 변화를 느끼면서 다시 찾은 나의 블로그의 글을 보자니, 

임산부 이야기가 있다. 

이게 언제적이더라... 


그때는 친구가 놀러온다고 이 뱃지를 주문했었는데, 

나, 이제 임산부 당사자가 되어서 이 뱃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받아 둔 뱃지를 어디다 두었는지 알수 없어서, 다시 주문했더니, 다시보내준다. 

좋은 나라다. ㅎㅎㅎ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국의 임산부를 대하는 시스템과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국의 NHS(국민의료보험)에 대해서 이래저래 말이 많다. 

특히 산부인과가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의 낙후한(?) 시설이 

엄마들 사이에서 꽤나 비교대상이 되는 것 같다. 

돈을 내지 않는 이 나라와, 자식이 최고인 대한민국의 산부인과를 어떻게 비교를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의 첫 NHS 경험은 사실 굉장히 좋았다. 

GP(General Practitioner)도 친절하고, 새로 생긴 아파트에 생긴 병원(NHS Medical Centre)이라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청결했다. 처음 GP를 등록하고, 아플때 마다 가는데, 

이 병원은 매일 아침 예약을 받기때문에, 

2-3주씩 예약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8시가 땡! 하는 순간 전화를 해야, 그날 진찰 예약을 잡을 수가 있다.

시간을 놓치면 금새 예약이 차서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해야 한다.

내일이나 모레 예약은 잡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게 더 좋은 방법 같기도 하다. 그날 아픈사람이 먼저니까.. 


몇달전에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GP를 찾아갔다. 

초음파를 기대하고 갔는데, 동네 병원에는 그런게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내가 진단을 하고 소아과, 내과, 산부인과, 치과를 바로 찾아가지 않는다.

여기는 아프면 무조건 GP를 찾아가 진단을 받고, 

GP가 연결해주는 병원으로 간다. 간단한 병은 GP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으면 된다. 

뭐.. 감기는 여기선 병이 아니다. 비타민 먹으라고 하더라. 물 많이마시고.ㅎㅎㅎ 

머리 아프면 아스피린이나 진통제 먹고. 

기본적으로 감기로 병원가는 사람이 없다는... 


GP는 나더러 테스트를 해봤냐고 묻는다. 

대충 대화가 이랬다. 


응. 해봤지.

결과는?

임신이래.

계획한 임신이야?

응. 기다렸어.

축하해. 


그러면서 여러가지 책자를 주고, 다음으로 갈 병원과 미드와이프와의 약속을 잡아준다. 

주의사항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기서 문득,

어, 이게 뭥미.. .싶었다. 

그러니까 이 의사는 나의 임신테스트기를 믿는다. 

뭐 초음파고 그런게 없다.

보통 의사가 '임신이예요~ 축하드려요~' 하는게 우리네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시츄에이션 아니던가... 


뭐, 아무검사도 없다. 

내가 나 임신된거 맞아요? 하고 물으니,

너 테스트 해봤다며? 나한테 되묻는다. 

뭐 여튼... 그렇다 치고,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 이야기들이 나의 고정관념을 열심이 깨어 주고 있었다는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나.. 한국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봤나..

아니면 나 한국에서 아이를 안가져봐서 모르는 건가... 




GP왈. 

12주 즈음해서 미드와이프(산부인과 의학지식을 어느정도 가진 전문 산파)하고 약속이 잡힐 거야.

그리고 나면 12주 초음파랑 피검사도 할거구. 

그때 다운증후군이나 기형아 검사도 하게 될거야.

의심이 되면 정밀검사를 하라고 미드와이프가 알려줄거야. 

그렇지 않으면 건강한거니까 걱정은 하지마. 

너가 어느 의사의 조언을 듣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술은 일주일에 1-2 유닛(Unit: 350ml 병의 약 1/3 정도의 양) 정도는 괜찮아.

담배는 왠만하면 끊는게 좋다고 생각해. (그러면서 담배 끊는 팜플렛을 준다.) 

12주까지는 유산이 많아. 

영국에서는 약 30%가 유산이 돼. 


내 지난달 생리 시작일을 물어보더니, 


넌 지금 6주쯤 되었을 거니까, 

6주정도 기다렸다가 아이가 잘 크고 있으면 초음파를 찍으러 가면돼. 

그전에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연락을 바로 하고,

아니면 여기로 전화를 해도 돼. (그러면서 수많은 응급전화번호들을 준다.) 


12주까지는 자연유산이 많이 되니까 걱정말란다. 너 잘못이 아니라고. 

'12주 까지는 자연유산 확율이 높으니까, 조심하여야 되요.' 가 원래 정답아닌던가. 

나는 아직 젊으니까 자궁도 건강할거고, 유산한다고 해서 다시 아이가 안생기는게 아니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랜다. 너무 엄마(여성)의 권리를 생각해 주신다. 

이제 임신해서 확인하러 온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가 이렇다. 


나 너무 조선시대 드라마를 많이 봤는지, 

은연중에 유산된 엄마를 나무라는 시어머니들을 드라마에서 봐와서 그런지, 

이런 대화가 영 어색하고 신선했다. 영국이라서 그런걸까,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걸까. 


그래서 12주까지는 초음파도 안찍는다.. 그건가? 

여튼 아이가 뱃속에 있는지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하려면 6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초음파 없던 시절에는 믿음으로 40주를 기다렸겠지...

찍고 싶으면 사립병원에 가면 되는데 비용인 수십만원이다. 

그냥 기다릴랜다.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다. ^^ 


그리고는 미드와이프와 약속을 잡았다는 컴펌레터와

12주 초음파 약속을 잡은 레터를 주고 이제 집에 가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다르고 '어'다르다더니... 이 사람들의 문화라고 해야하는 건지, 

이 의사의 말솜씨가 좋았던 건지... 

문득 내가 임산부를 '한 생명의 숙주'가 아니라 

엄마이자 아이를 품은 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라면 으레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받았던 '강요'의 느낌이 사라지니

어색하기 까지.. 


마치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청소하려고 빗자루 들었는데,

엄마가 너 청소좀 해. 그러면 마음이 뒤틀리는 심사와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엄마가 되면 으레 자기 아이를 지키고 사랑하는 본능이 있다는데,

(실제로 그런맘이 어서 생기는지 올라오는데..)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말이 많다. 

마치 내가 시켜서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랑하는 거지, 사회나 문화가 시켜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우리사회는 사회가 시켜서 아이를 사랑하고 교육하고 대학에 밀어넣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다. 어쩌면 자신의 자발적 사랑의 동기와 사회적 억압이 섞여 버려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육시키기를 원하는 건지, 

남들이 다 하는데 따라가지 않을 수 없어서 내 아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굴레를 씌워 해라해라 하는지,

무엇때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선택과 책임을 잘 인지하고 있는 난 성인인데 말이다. 

실수도 할 수 있지만, 그마저 나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가끔은 내가 십대에 임신을 한 것처럼 사회적 '교육'이 쏟아져 내린다. (물론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마치 모두가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많은 좋은 것 중에, 몇 개의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되지 않은가. 

왜 좋은 것 1번을 선택하지 않으면 다 나쁜거라고 생각되게 만드느냔 말이다... 


물론 술을 마셔도 된다고 술을 마실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 맘이 간사한지라, '절대' 하면 안된다고 하면 약간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너의 선택, 너의 책임'이라는 것이 더 무서우면서도, 나의 자율성을 믿어주는 '그 점'이 좋다고 느꼈다. 

물론 엄마가 되어 놓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건강한거, 더 좋은거, 더 이쁜거 찾게 마련이다.

열심히 책 찾아가며 피해야 할 음식, 먹으면 좋은 음식 열공 삼매경에 빠진다. 

GP의 말대로 '의사'는 '조언'을 줄 뿐이다. 

선택은 부모의 몫이다. 부모는 성인이니까. 


계획된 임신이냐는 항목에서도 한번 흠찟했다. 

만약에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임신중절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해줄 기세였다. 

선택은 '너'의 몫이니까.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나, 아기외에는. 심지어 아기아빠도 들어설 자리가 부족하다. 

(요 점에 대해서는 '미드와이프와의 상담'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많은 것들을 찾아보고, 내가 할 것과 하지 않을 것들을 공부한다.

새 생명을 잘 키워가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새삼 느끼는 순간순간이지만, 

그 기쁨에 비할쏘냐.. 


그렇게 어리둥절 집으로 왔다. 

이걸 가족들한테 임신이라고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나도 아무것도 못느끼겠는데,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게 맞나 아닌가..

그렇게 혼란스런 6주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 '12주 미드와이프와의 상담'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