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elling the stories

미드와이프와의 첫만남; 공감해주는 그녀.

yyva 2012. 12. 15. 17:00

드디어 12주. 미드와이프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초음파는 날짜가 조금 뒤로 잡혀 있었다. 

먼저 미드와이프와 만나서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는 집 주소에 따라 산부인과가 있는 병원이 결정되는데, 

내게 정해진 병원은 나이팅게일이 일했었다던 병원이랜다. 뭔가 있어 보인다. ^^ 


산부인과 병동으로 들어가서 접수를 하니 두꺼운 주황책자를 준다. 

읽어보고 쓰라고 한다. 통역이 필요한 사람은 처음 GP를 만날때 신청하면 다 정해준다. 

무료로.


난 그냥 내가 해보기로 했다.

역시 의학용어들은 모르는게 너무 많다. 

신랑과 함께 공부하듯이 사전을 펴고 이것저것 적는다. 

적어야 하는 페이지가 많다. 

가족력부터 시작해서 사는 집, 종교, 남편과의 관계까지 다 적는다. 

남편의 가족력까지. 근친인지도 물어본다. 그게 한때 귀족들의 풍습이었던 나라니까.. 


여기서는 남편을 내가 'Husband'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Partner'라고 불러주신다. 

이 작은 섬나라에 이미 많은 문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상담실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산파는 할머니여야 할 것 같은 느낌.. ㅎㅎ)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나를 반긴다. 근데 남편은 반기지 않는다... 엥?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남편은 나가 있으라고. 

어리둥절한 남편은 우선 나가고. 

나랑만 할 이야기들이 있다고 하셨다. 


의자에 앉자마자 내가 들고온 그 주황색 책자를 받아들고 펴시기 전에,

인사를 하시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oooo 예요. 반가워요. 지금 12주 되었죠? 

네.

혹시 파트너가 때리거나 강요하거나 못살게 굴지는 않던가요? 

네? 

파트너가 강압적이어서 삶에 위협을 느끼고 있느냐구요.

아뇨. (난 웃었다.) 

사는 집은 괜찮아요? 본인이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편안한 공간이예요? 

네. (물론 더 좋은 집이면 좋겠지만... 이라고 생각했다.) 

파트너와는 어떤 관계죠?

남편이요. 

본인이 지금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인가요? 

네.. 뭐.. 그렇죠. ^^ 


미드와이프도 이제 웃는다.

다행이라면서. 

이 첫 대화에서 난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지금까지 공부해 온 전공이 이런거라 그랬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랬는지, 

내게는 이상한 고정관념들이 있었나 보다. 


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참으로 머리속의 나의 고정관념들이 참 잘도 깨진다. 

나름 유들유들하니 말랑말랑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인데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은 항상 공부가 된다. 


만약, 내가 진짜 맞고 살거나,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 처음의 대화가 나를 얼마나 해방시켜주는 느낌을 주었을까...

얼마나 내가 보호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을까..

우리는 왜 좋은 쪽으로만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을까?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지내냐'는 말보다, '잘 지내냐'는 말이 항상 당연한 듯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야 사람들이 날 무시시 않을 것처럼 생각해서 그렇다고 으레 대답을 하는 걸까.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만약 내가 힘든 상황에 있는 임산부인데, 

이 미드와이프에게

별일없죠? 

뭐 별다른 증상은 없어요?

입덧은 어때요?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네요.

라는 질문이나 좋은 이야기들만 들었다면, 

또 감추었겠지. 이건 내 업보인가 보다... 하고 말이다. 

사실 그런 대화를 기대도 하지 않았겠지. 미드와이프가 경찰도 아니고. 

 

내가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왠지 난 눈물이 먼저 났을 것 같았다. 

마치 이 미드와이프가 나를 '공감'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가끔은 이런 경우를 통해서 범죄를 찾아내기도 하고, 

갈곳없고 힘든 임산부들을 위해서 사회적 대책도 있다고 했다. 

이 엄마같은 미드와이프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병원을 찾는 임산부들의 힘든 사정까지 토닥여 주고 있다는 것이 이 사회의 부러운 점이 되었다. 

물론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임산부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겠지만, 

모두에게 그런 행운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사회가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였다고 할까...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남편을 불러도 되겠냐고 나한테 묻는다. 

좋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까 그 어리둥절한 얼굴을 그대로 하고 들어왔다. 

어울리지 않게 멋쩍은 미소를 지어본다. 

미드와이프는 주황색 두꺼운 서류책자를 이제사 펴고, 실질적인 질문들을 하면서,

내가 채워넣지 못한 칸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내가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 적어 넣고, 여러가지를 프린트해서 그 책자에 붙여준다. 

집에 가서 자세히 읽어보란다. 

GP에서 다 하지 못한 피검사를 추가적으로 했다. 


앞으로 임신이 지속되는 동안 어떤 과정이 있는지,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나와 남편의 가족력과 질병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고 대답한다. 



그 중, 

아기를 낳는 방식을 선택하는 부분이 있었다. 

수중분만, 집에서 분만하는 것, 병원에 마련된 방에서 분만하는 것, 병원 분만실에서 분만하는 것 등 중에 

고를 수 있다. 

아직은 개념이 없다고 그러자, 나중에 결정하란다. 

비용이 다른가 물어봤더니, 다 무료란다. 참 좋다.~~~ 

난 그냥 선택만 하면 된다니...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이를 낳을 때 치러야 하는 의식이 있는지, 

종교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시술이 있는지 등등 

생명에 위협이 가지 않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배려를 해준다고 했다. 

아이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사람인지라, 의식따윈 없어요.. ㅋㅋ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ㅎㅎ 

아이만 건강하게 잘 태어나면 되어요. ㅎㅎㅎ 


몇몇 문화권에서는 남자가 보면 안되거나, 

태어나자마자 꼭 뭘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것도 배려해주나 보다. 


그저 애 낳고 다음날 바게트 빵만 주지 않기를.. .. ㅠㅠ 



미드와이프가 한국은 의사 중심의 분만(Doctor-led-labour)이냐고 물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미드와이프가 있느냐는 말이었나보다. 

난 간호사가 있다고 했다. 의사가 분만을 하고. 

여기의 미드와이프의 시스템 중에 다행이다고 생각한 것은, 

여기는 '팀'제로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나의 미드와이프 '팀'이 나를 맡는다. 

나는 한 팀의 어느 미드와이프와 만나 상담을 해도 나의 기록은 항상 나의 주황 노트에 남아있다.

때로는 같은 미드와이프를 때로는 다른 미드와이프와 상담을 할 수 있지만,

난 한 팀의 미드와이프만 만난다. 



나의 상태를 팀이 관리하고 체크한다. 

그러니 한 미드와이프가 휴가를 가도, 

내가 분만하는 날 한 미드와이프가 갑작스레 아파도,

나는 항상 누군가에 의해 관리 받아지고 있다. 

간혹 한국에서 담당의사가 아프거나 일이있어 내가 분만하는 날 나타나지 않는 경우,

산모가 불안해 하거나, 다른 의사가 잘 모르고 분만을 진행하거나 하는 일이 있다는데,

적어도 그런 확률은 낮아지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의사는 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때만 나를 검사한다고 했다.

나는 환자가 아니라 산모니까. 




장장 한시간의 상담을 마치고 

(보통은 20-30분 정도 걸린다는데, 난 그날 빠진 혈액검사를 하느라 오래 걸렸다고 했음.) 

걸어나오는데, 남편이 물었다. 


나 없을 때 뭐래?

너가 때리냬. 

... 


다음 초음파를 기다리며 

주황색 두꺼운 서류 옆에 끼고 병원을 나섰다. 

뭔가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지... 



- 12주 첫 초음파 편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