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elling the stories

20주 초음파 :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yyva 2012. 12. 27. 06:35

20주가 초음파를 찍으러 가는 날. 

주변사람들이 난리다.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는 날이란다. 


알게되면 카톡보내달라고 미리미리 문자를 보내왔다. 


나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떨렸다. 

누군가 그랬다.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서운하다고..


서운하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들이면 딸이 아니어서 서운하고, 

딸이면 아들이 아니어서 서운 하단다. 


바라는 성별이 나와도, 인간은 자기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서운함이 있나보다.

나도 그럴까.. 

아들딸 누구든 건강하게만 있다면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같은 병원 같은 검사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리울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탬즈강을 사이에 두고 빅벤을 바라보고 있는 병원의 창밖의 뷰가 아름다웠다. 

간만에 난 햇살이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하고 있었다.

시간 맞춰 오겠다는 신랑은 시간이 넘었는데,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아

더 조급해진 마음을 창밖을 보며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나는 작은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순간 사라졌는데, 환청인가 싶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몇번 들렸다. 그러더니 웃음 소리가 난다. 

여기 가까이에 분만실이 있나? 

분명 아래층이 분만실이라고 했는데... 

그럼 아래층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환청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 졌다. 


이제 20주 후면, 나도 분만의 아픔을 느껴야 하겠지... 

우리 사랑이를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갑자기 느껴진 공포를 무마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오싹해진 느낌을 지우기에는 무리였나.... 

그런 상상에 침이 다 말라왔다. 

그동안 TV에서 수없이 봐 온 장면인데도, 막상 나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 순간 신랑이 나타났다. 

내 이름이 불려져 초음파실로 같이 들어갔다. 

상상은 그만, 현실로 돌아왔다. 




이번 검사실에 걸린 화면은 너무 작았다. 

신랑은 내 옆에 있다가 잘 안보인다며 화면 가까이로 가서 들여다 보았다. 


소노그래퍼는 열심히 크기를 재었다.

오늘은 심장과 방광 같은 내장이 잘 만들어 졌는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라고 했다. 

좌심방 우심실 같은 것들을 확인하면서, 보여줬다. 

심장이 4부분으로 잘 나뉘어서 뛰고 있단다.

방광도 잘 작동하고 있단다. 

아가가 양수를 먹고 방광을 거쳐 오줌도 싼다고 했다. 

어른이 배출하는 것과 다른 깨끗한 오줌이니 걱정을 하지 말란다. ㅎㅎㅎ 


지난번 소노그래퍼도 그랬지만, 

여기 병원에서는 설명을 참으로 자세히도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대기실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차례에서 차근히 암호같은 그래프와 기호들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자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더 안정된다. 

말로 해주는 간단한 문구로 적힌 검사결과서가 아니라서, 

확률과 의학용어로 잔뜩 적혀진 문서들은 

내 주황색 파일에 붙혀지면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나의 상태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한결 기분이 가볍다. 


초음파를 찍는 내내 소노그래퍼는 그래서 입이 더 바쁘다. 


사랑이의 뇌를 찍어야 하는데 우리 사랑이가 움직이지를 않고 조용히 있다.

소노그래퍼는 거의 침대위에 누운 나에게 엉덩이를 흔들라던가 이렇게 저렇에 움직이라고 시킨다.

하도 안 움직이길래, 

"사랑아... 너 검사한대, 움직여줘야지.." 

한마디 했다. 여전히 소용이 없었다. 

맞다.. 아직 말귀를 알아들을리 없지. ㅋㅋㅋ 


한참 후에야 휙 돌아 섰나 보다. 

뇌의 사이즈 모양들을 재고 나더니, 소노그래퍼가 건강하다며, 

"Happy little baby" 라고 한다. 기분이 좋아졌다. 


성별을 알고 싶냐고 물어본다.

우리가 알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는 날 까지 서프라이즈로 남겨두고 싶어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너무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알려달라고 했다. 

"It's a boy, definitely a boy.(아들이네요, 확실히)" 그런다. 

조심성많은 영국인들이라 99%의 확률이어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데, 

이 사람 엄청 확신하나 보다. 태어났는데 아니면 어쩔려구.. ㅋㅋ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 서운했다. 

내가 이런 맘이 들줄 몰랐는데, 나도 그랬다. 

그 때 그 사람의 말이 맞았나... .? 

머리속에 있던 리본들과 분홍드레스들은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신랑은 '젠더(Gender)'를 공부하는 내가 분홍과 여자를 연결하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 걱정을 하는 나를 놀렸지만, 

나는 아직 성 정체성은 신체와 함께 태어나는 것과 학습되어지는 것이 조화롭게 영향을 미쳐 결정되는 것이지, 

부모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아직은 사회적, 학습적 성에 있어 부모로써 분홍드레스와 아들을 연결시켜줄 생각은 없다고 말뚝을 박았다. ^^

어째,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옷을 입으면 그런대로 멋스러운데,

아직도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아이들의 옷을 입히면, 그게 이뻐보이지 않는다. 

내가 수십년 그렇게 자라와서 인가... 


순간 머리속에 그리고 있던 Girls section의 화려한 그림들은 사라지고, 

Boys의 댄디하고 귀여운 보습들이 머리속을 가득 차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어쨌거나 제 자식이라고, 요놈을 생각하니 귀엽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리는 오늘을 어떤 사진을 줄 지 몰라, 기대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미 처음부터 소노그래퍼가 사진을 인화해 두었단다. 

우리는 이번에도 세 장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이미 두장을 우리에게 건낸다. 

돈은 지금 줄까? 접수처에 낼까? 물어보니,

이젠 돈을 안 받는단다. 

NHS에서 종이값 준다고 했다. ㅋㅋㅋ 

뭥미. 


몇주 새에 금방 바뀌었네.

그래서 그런지 지난 번처럼, 이 사진 줄까 저 사진으로 줄까 상담도 안하고, 

종이액자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돈이 무섭다. ㅎㅎㅎ 




오늘도 우리는 병원 1층 카페로 와서 제일 먼저 카톡을 보냈다. 

부모님들께.

부모님들은 '아들이란다, 건강하다'는 소식에 다시, '감사하다..' 하셨다. 

그 마음 이제 나도 알 것 같다. 

감사하다.... 



이제 20주 건강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