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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소설을 빙자한 현실.

yyva 2011. 12. 4. 09:36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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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잠시 들른 김에 한국어 소설책들을 잔뜩 사서 박스로 배편에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니 한동안 영어책들만 보니 왠지 감성이 메말라 버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다음 과정을 준비하며 한국문학에 나름 '위로'받고 싶어 항상 문체가 시원하면서 꼭꼭 씹어넘기는 듯한 느낌을 가진
공지영 작가의 신작을 시작으로 여러 책들을 보냈었습니다.

배로 보내고 나니 두달이나 지나 집에 도착했는데,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영국 세관에 걸러 무려 25파운드라는 거금을 내고 찾아오기는 했지만. ㅋㅋ ) 
박스를 뜯자마다 앉아 읽기 시작한 것이 밤을 지새우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것이 
이 '도가니'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도가니 법이 만들어 진다고도 하고, 
다음에서 계속 연재도 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저러 사정을 그저 수박겉핥기로만 듣고 있던 저로서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아... 왜 그렇게도 한국이 '도가니'로 떠들석 했는지 충분히 공감이 갔습니다. 

안개를 묘사하는 첫 장에서부터 왠지 책의 전체적인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답답하고 무겁고.. 

안개는 때때로 자칫 담배연기와 그 모습이 겹쳐지며 연상되었습니다. 
안개가 끼지 않은 곳에서 인간은 담배연기로 안개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형상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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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학원 원장의 아동 성폭행.
그를 묵인하는 선생님들.
배경색을 칠해주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운동가들. 
주인공 강인호와 인권운동가 서유진. 

그리고 잘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소설은 마치 소설이 아닌듯 
주인공의 모습도, 그의 아내의 모습도 어쩌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보통 주인공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되는 대신, 
나는 주인공의 아내의 입장에서 글이 읽어졌던 것은,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인생의 '장'을 살고 있어서 겠지요.. 


처음에는 분명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이 확실한듯 소설이 전개되는듯 했는데, 
공지영은 현실을 읽어주는 듯이
반대편 혹은 다른쪽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최수희 장학관이 "아, 방과후면 우리 소관이 아니네요." (p125) 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의 초첨은 자칫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소관'으로 변질해 버리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나.. 싶었는데, '누구의 소관인가'가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도 말을 던질 수 있다는 이 현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목일 것입니다. 

이런 장면은 여러군데 나오는데, 교회에서 "...그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p159)라는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래..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기 죄를 잘 모르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 
시련이라 생각하고, 이 시련이 가고 나면 좋은 일이 있겠거니 하는 .. 합리화 또는 정당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습니다. 그러는 순간 나의 한구석이 부끄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는 동안 법이라는 제도는 우리를 다시한번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이 소설을 더욱 우리를 현실로 이끌어 줍니다. 
문제가 해결 되어 이제는 아이들이 어둠에서 나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등장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가야 했습니다... 라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법제라는 것은 문제를 정리해주고 깔끔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더 모호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감옥살이 단 6개월로 아이들의 공포는 없어지지 않고, 
그들의 죄값은 치러진 것이 되니, 
도대체 이 상황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시간만 보낸 것이 되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법의 판결에 맡길 수 없지 않은가... 하는 결론으로 나는 치닫고 있었습니다. 

연두 어머니와 서유진의 행동을 보면서 희망을 느끼고, 
나 또한 그들의 용기에 공감하며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어쩌면 강인호의 아내가 연두어머니의 입장이었더라면
'기부금'을 찔러주는 용기가 아이를 법정에 세우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용기로
바뀌어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나와 같은 아내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고,
서유진은 그 인내와 열정으로 아이들 곁을 지키고,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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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글을 쓰는 내내 이 소설의 주제를 자기의 문제로 삼았는 지도 모릅니다. 
그의 필체는 감정적이면서도 냉정하고 현실적이었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 글을 읽고 감정적 분노 뿐 아니라 행동을 요하게 끔 하는 묘한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어쩌면 도가니 법은 이런 그녀의 필체가 가져다 준 결과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한없이 느껴지면서도,
강인호를 비판할 수도 없으면서도, 
서유진과 연두 어머니처럼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십분 헤아리면서도, 
밥줄을 생각하는 장경사를 못되었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체면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권력자들의 비겁함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니, 
이 소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는데 수년의 시간, 
문제를 끌어내는데 수년의 시간,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년의 시간,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하나의 문제로도 살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한쪽 인생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가 이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장경사의 아이가 자애학원 피해자였다면, 
연두 어머니가 장학관이었다면, 
서유진이 판사였다면, 
자애학원 교장이 인권운동가였다면, 
목사의 아들이 유리 할머니였다면.. 

딜레마는 달리 그려졌을까요?...


소설이후 영화로도 제작된 도가니.



있는 자는 없는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더 있는 자는 베풀어야 한다는 진리를
우매한 자들의 입방정이라 치부하는 자본주의 신봉자들에게는
권력이나 존경마저 있는 자의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듯합니다.
소설은 이런 부분을 더욱 부각해서 보여주는 듯 하구요.

공지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 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라는 말을 던지며
인간의 수많은 인생들을 느낌는 감상을 표현해 줍니다. 소설을 보는 독자들이 이 책을 덮으며 느꼈을 감정을 한마디로 정리해주니 그녀의 글에 저는 다시한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다시 표지를 바라 봤을 때 
안개와 함께 전체의 색을 보여주는 녹색이 왠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은 마음에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냉정히 '사회'속에 살아가는 '내 인생'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아직 도가니를 못 읽어 보셨다면, 
한번쯤을 꼭 읽어보면 좋을 도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