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오랫만의 독서와 서평이다.
아들을 재우면서, 등에 업고 한손에는 책을 들고 읽었다.
그 많은 시간들 책을 보지 않다가, 어째 나는 그 와중에 독서의 시간이 그리 귀한걸 알았을까.
여튼 아이를 낳고 정말 수 개월만에 끝낸 책하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신랑과 투어사업을 시작하면서,
더욱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그 관심은 단지 여행지에 관한, 혹은 여행 방법에 관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여행의 철학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기는 하지만,
마케팅을 위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심리, 또는 동기 까지는 함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동감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 책을 사게 된 동기는 사실 '여행'이라는 키워드 보다는 '알랭 드 보통'이었다면 우스울까.
육아에 지쳐, 가끔은 화사하고 거침없었던 싱글의 직장녀일때 나의 가방속을 항상 드나들 던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
어쩌면 그의 이름이 나의 이 현실을 왠지 그때의 모습으로 잠시 환각이라도 시켜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읽고 나니, 전자의 배움이 컸다.
물론 나도 여행자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여행 사업과, 여행. 그리고 여행자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해 주었고,
여행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좀 더 의미있는 대화들을 나눌 수 있는
주제를 던져준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몇가지를 꼽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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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살고 있는 런던에 그도 살았다니... 왠지 뿌듯. 이상한 감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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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과 터미널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공감되는 나의 심리.
나도 공항 근처에 살았다면 공항의 카페가 마치 나의 로망이 되었을런지도.
기대 심리라는 것을 가장 많이 불러 일으키는 곳이 아닐까, 이곳이.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7쪽, 기대에 관하여)
블로그를 검색해 보면, 요즘은 여행지 리뷰 투성이다.
도대체 안가본 곳이 없다. 나도 방금 블로그에 방문기 하나를 올려 놓고, 이글을 쓴다.
그건 무슨 심리일까. 그곳에는 왜 갔는지, 가게된 동기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도,
그 생각과 고민의 과정도 결과도 적지 않았다. 그저 그곳의 위용과 정보만 나열된 글이다.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거나, 혹은 기대를 주거나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사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정보보다 "여행에서 철학적인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17쪽)을 제기하는 여행 가이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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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들 역시 정신의 습관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비슷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따금 건물 내장에서 엘리베이터가 쉭 하고 솟아오르는 소리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호텔 방에 누워 있으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 밑에 줄을 그을 수 있다. 우리의 경험에서 이제까지 무시해왔던 넓은 영역위를 날아 볼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일 속에서는 이르지 못했던 높이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주위의 낯선 세계로부터 은근한 도움을 받는다." (81쪽,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여행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이유들 때문에 여행이 필요하기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의 부류에 속하기도 할 것 같고. 역마살이라는 운명을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즐기기도 했던 한때, 나는 원래 좀 돌아다녀야 하는 것 같아..라고 변명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위의 낯선 세계로 부터 은근한 도움을 받기를' 좋아해서 그런 선택들을 나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필요했는 지도 모를일이다. 물론 나는 요즘 아주 많이 여행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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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반응 양식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또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찍 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에 영향을 받는다고 우리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자잘한 것들도 그 속에는 풍부한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 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 ....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고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 (101-102쪽,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가끔은 영국에 여행을 왔기 때문에 여기서 만나는 한국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한국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한때 이국적인 외국의 느낌을 마치 다른 한국사람들이 없애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외국에서 오래 지내고 보니, 요즘은 한국의 것들이 가끔 이국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을 잠시 들르고 나면, 뭔가 새로운 느낌과 실제로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오며 이국적인 것에 대한 주관성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익숙한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느낌이겠지. 단지 고향에 대한 것들만은 아닐 것 같다. 고향을 여행으로 가는 나의 상황속에서는 '보통'의 이국적인 것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겠다. 여행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것들에 대한 느낌이 항상 긍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도 생각치 못하는 일이다. 그것이 외국이든 고향이든, 기분 나쁜 '이국적임'은 언제나 여행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불청객일 수도.
내가 이 이국적인 곳에 눌러앉아 살아보려는 나의 심리는 어쩌면 내가 느낀 이 이국적임이 나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더 충실하게 들어 맞았거나' 혹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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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는 1873년 가을에 탐험가나 학자처럼 사실을 수집하는 일과 내적이고 심리적인 풍요를 목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이용하는 일을 구별했다. 대학 교수로는 예외적인 일이었지만, 니체는 앞의 행동을 모욕하고 뒤의 행동을 찬양했다. 니체는 이 에세이에 [삶을 위한 역사의 용도와 불리한 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유사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실들을 수집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진정한 과제는 "삶"을 고양하기 위해서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 한다.""(146쪽, 호기심에 대하여)
이제는 설명과 해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지구가 파헤쳐진 느낌이다. 보통 스스로도 마드리드를 여행하면서, 안내책자에 정확하게 적힌 수치들과 정보들에 우리는 더 이상 훔 볼트 처럼 "1만 6,000여점의 새로운 식물 종을 가지고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삶을 고양해주는 작은 생각들을 가지고 여행에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단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생각들을 공유함으로서 우리는 또 하나의 정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마치 블로그에 리뷰를 쓰고, 정보 뿐 아니라 나의 배움과 생각을 공유할때 그곳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이 얹어진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되고, 나는 그로 하여금 하나의 정보를 더 만들어 내, 마치 훔볼트와 같은 새로운 종의 '생각'과 '감상'을 써 가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나는 니체의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다. 여행은 이제 '내적이고 심리적인 풍요를 목적으로 이미 알려진 사실을 이용하는 일'로서 더욱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힐링'의 여행을 더나고, '생각의 여유'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도 그 편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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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워스로 시골을 감상한 보통의 생각은 정말 영리했다. 시로 그려진 자연을 기대하고 나서 그것을 느낄 때는 자연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다운 내안에 '감상'이라는 배경이 존재해 주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자연을, 시골을 여행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수선화를 표현한 글을 보면서 수선화를 바라본다면, 내가 나의 경험과 무지의 눈으로 수선화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일 터.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하거나 수심에 잠겨 있을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201쪽,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그래서 나는 가끔 영국에서 이국적임을 느끼기 보다, 자연에서 이국적임을 느끼고, 그 여행을 더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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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착하게 살았는데도 왜 고난을 겪어야 하느냐는 욥의 질문을 받자 욥의 눈길을 자연의 엄청난 현상으로 돌린다. 하나님은 말한다.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놀라지 말라. 우주는 너보다 더 크다. 일이 네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놀라지 말라. 너는 우주의 논리를 헤아릴 수 없다. 산 옆에 있으면 네가 얼마나 작은지 보아라. 너보다 큰 것,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세상이 너에게는 비존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다. 숭고한 곳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하찮음과 연약함을 생각하도록 하라." (225쪽, 숭고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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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프로방스에 머문 지 몇 년 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지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248쪽,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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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의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279쪽,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보기 위한 보조장치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대체하는 물건으로 사용했으며, 그 결과 전보다 세상에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되었다. 사진이 자동적으로 세상의 소유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82쪽,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오늘도 사진을 찍는 것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러스킨의 말대로 왠지 사진을 찍으면 이 순간을 내가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윈도쇼핑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것은, 맘에 드는 물건들을 사진속에 담아와서 잠들기전 집에서 한장씩 꺼내보며 마치 그 물건을 사온 것과 같은 기분을 만끽하는 것. 순간을 만끽하고, 현실을 살피는 사람으로 나를 되짚어보는 글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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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메스트르의 작품은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통찰로 부터 출발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어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 ... 여행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가 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고 간다." (308-309쪽, 습관에 대하여)
아이를 업고 책을 손에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보니, 마치 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이라는 두 글자에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책을 들었고,왠지 책을 읽는 이 순간 만큼은 여행자의 심리를 가지고 수용적인 태도로 임했다. 보통의 글귀에서 새로움과 이국적임을 느꼈고, 예술과 자연의 숭고함 마저 느꼈다. 그리고 나의 습관을 되돌아 보며, 새롭게 눈을 뜨니 마치 나는 등에 아들을 업고, 방을 뱅글뱅글 돌고 있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해야하는 일이, 재미난 여행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만들었다.
땡큐, 보통.
런던에서 한번 쯤 지나치며 만나볼 수 있기를.
2014. 10.6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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