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elling the stories

만삭의 단상

yyva 2013. 4. 2. 20:08

임신 6-7개월 즈음 되었을 때, 

배에 살 트임도 없고, 별 다른 증상 없이 배만 나온 임산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있는 엄마들은

"행운이다" 혹은 "부럽다.." 등등의 말들로 나를 위로 했지만, 

얼마나 나를 짧은 인간으로 생각했을 까 하는 생각이, 

만삭이 되어서야 들었다. ㅠㅠ 

이제 9개월 지나바라.... 하는 마음들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ㅎㅎㅎ 


9개월이 지나 10개월에 들어섰다. 

이제 출산 예정일을 2주 남겨놓고, 지난주 부터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 진다. 

잠은 대체 줄지 않는데 잠을 못자니 맨날 쾡한 얼굴이다.

붓기는 생전 없더니 요즘은 퉁퉁부운 얼굴에 손에, 발에.. 불쌍해진다.

살이 트이지는 않았지만, 배 가죽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서 실핏줄이 다 보일 지경이다. 


이제 부터는 열심히 돌어다니고 운동도 해서 

아이가 제 날짜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데... 

비스듬히 누워 티비를 보는 것이 만사 편하고, 

물한잔 가지러 부엌에 가는 것 조차 힘들다. 


임신... 이런거 였구나. 

입덧 안했다고 방심할 일이 아니었다. 


임신 마지막 4주에 아이가 엄청나게 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매일 매일 배의 크기가 얼마나 커지는지 느껴질 정도다.

아들이라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가 크면 나오기 힘들다는데 걱정도 늘어간다. 


침대에서 뒤척이는 일이 이리도 힘들줄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다리에 쥐가 나지 않고 시원하게 기지개 한번 펴 봤으면.. 

별게 다 신기해지는 시기다.

신랑은 자다가 여러번 '봉창'을 맞는다. 

내가 "쥐! 쥐! 쥐 났어!!" 소리 질러대면, 눈도 안뜨고 새벽에 자다가 다리를 주물러야 하는 상황에, 

뒤척일때마다, 내가 목이 마를때마다 같이 일어나야 하는 고통... 


아이는 혼자 낳는게 아니다. 역시. 

우리 사랑이가 엄마, 아빠를 '범사에 감사'하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중에 "Don't just stand there, I'm having your baby!"(거기 그냥 서있지만 말라구, 내가 지금 니 애기 낳고 있그든!!) 이라는 리얼리티 쇼가 있다. 

제목에서 예상하다시피, 

이제 곧 아빠가 될 사람들에게 산부인과 조산원(간호사)들이 예정일 약 2~3주 전부터 교육을 시작해서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의 기록을 방송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방영되고 있는데, 

지난주 첫 방영이 되었었다. 

만삭인 나로서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다. 


대개가 젊은 아빠들이다. 

첫째는 임신한 아내를 이해하는 거다. 

배에 10킬로가 넘는 불뚝한 짐을 붙여놓은 조끼를 입고 24시간 생활을 해 보는 미션이 있다. 

이 남자들 마치 군장을 메고 다니듯이 그 조끼를 입고 다니면서, 

불편해 죽을라고 한다. 

사실, 불편한 것은 둘째 치고, 

이 불뚝한 배속에 있는 아이는 그 모형 조끼와는 달라서, 

엄청난 주의를 요한다는 것. 

어디 찔려도 안되고, 살짝만 닿아도 엄마는 놀라고, 

하루 24시간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없을 정도라는 점. 

그걸 실제로 3-4개월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결코 '스스로 컷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다. 


아빠들은 단 하루 그렇게 살고, 아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아이가 나올 때 함께 나오는 태반과 탯줄을 실제로 보여주기도 하는데,(엄청 징그럽다. 그리고 엄청 많다. 나도 충격) 

아빠들은 그런 것들이 자기 아내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와야 하는 고통을 짐작하듯 얼굴을 찡그린다. 

인형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낳는 장면을 시뮬레이션 하는 장면도 있는데, 

연습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21살 아빠가 되는 한 남자는 탯줄을 자르는 데 눈물을 그렁그렁 하드라. 


실제로 교육 기간이 끝나,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에

아빠들은 배운대로 잘 해 나간다. 

아내의 곁에서 손도 잡아주고, 격려해 주고, 

힘이 되어준다. 


그냥 서있는 아빠들이 아니다. 

새삼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곁에서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자기가 아프지 않고 아이를 낳아도, 

인생바쳐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가히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서 그런 사랑이 나오는 걸까. 


이제 그 날 D-day가 다가오니, 

우리도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래도 초짜 엄마는 걱정이 많다. 

만삭이 되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구나.